78세, 아직도 설계 중입니다
젊은 날, 아라비아의 뜨거운 사막과 아프리카의 건설 현장에서 10년 넘게 청춘을 바쳤습니다. 가족의 안락한 터전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린 끝에 마침내 서울 강남에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기계 도면을 그리며 평생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던 내 삶에, 'IMF'라는 불청객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것은 마흔아홉이 되던 해였습니다.
회사에서 조기 퇴직을 당하고, 정들었던 강남 집을 뒤로한 채 강북의 외진 동네로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도면을 그리던 손과 사무 혁신을 이끌었던 경험을 밑천 삼아 '마이타임 플랜'이라는 1인 기업을 열고 강의 무대에 섰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 1인 기업을 시작하며 직접 기록하고 활용했던 마이타임 플래너
삶의 무게가 다시 가빠져 오자 나는 미 8군 택시와 인터내셔널 관광택시의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새벽 공항 길을 오가며 만난 수많은 외국인 승객들, 도로 위에서 맞이한 무수한 아침과 밤... 그렇게 1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위기가 찾아왔고, 외국인 승객의 발길이 뚝 끊기며 나는 택시 운전석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이미 일흔을 훌쩍 넘긴 뒤였습니다.
남들은 이제 다 내려놓고 쉬어야 할 나이라고 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2020년 주택연금을 신청하며 삶의 경제적 안정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라는 전혀 새로운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거실 한구석에서 카메라를 켜고 쩔쩔매던 날들을 거쳐 3년 만에 유튜브 수익화를 이뤄냈고, 어느덧 수천 명의 구독자와 인생 후반전을 나누는 어엿한 유튜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책을 한번 써보시죠"라는 한 마디에 용기를 내어 펜을 들었고, 전자책과 공저를 거쳐 첫 개인 수필집 《두 번째 설계도》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어 지역 복지관 글쓰기 모임에서 이웃들과 함께 수필집을 지었고, 마침내 오는 10월 19일, 세 번째 종이책 《78세, 아직도 설계 중입니다》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 쓰고 가라.
Use It All Before You Go."
이 말은 내 삶을 관통하는 마지막 철학이자 다짐입니다. 통장에 남은 물질적인 잔고뿐만 아니라,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나오며 쌓아온 경험과 재능, 그리고 가슴속에 남아있는 열정까지 세상에 아낌없이 모두 나누고 떠나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도 나는 용인에서 내 삶의 마지막 설계도를 정성껏 그리며 글을 씁니다. 일흔여덟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내 오랜 지혜를 마음껏 나눠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의 후반전에서 길을 찾고 계신 모든 분께 제 삶의 도면이 조그만 응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은퇴는 도면을 덮는 날이 아니라, 내 진짜 설계도를 펴는 날입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